[기자수첩] ‘달리는 사이’, 20대 여성 아이돌의 고백을 방송에서 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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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달리는 사이’, 20대 여성 아이돌의 고백을 방송에서 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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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Jessica Valeta Date21-01-17 00:00 Hit38 Comme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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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만 하더라도 예능가는 남성 방송인들의 노다지였다. ‘아빠, 어디가?’(MBC), ‘남자의 자격’(KBS)부터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는 ‘아는 형님’(JTBC)까지. 제목만으로도 출연자의 성비와 연령을 알아차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넘쳤다. 이 방송들은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남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의외성을 발견하거나, 또는 공고히 하거나, 서로를 비방하며 웃음을 유도했다. 치우쳐진 성비와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폭력성에 시청자들이 피로감을 느낄 때쯤 ‘힐링 예능’이 등장했다. ‘남성 예능’에 대비되는 역할로서의 ‘여성 예능’도 출현했다. 테마도 다양했다. 관찰, 부동산, 먹방부터 패널이 전문 여성 스포츠인으로 구성된 방송도 전파를 탔다(E채널 ‘노는 언니’). 이들은 MC, 고정 패널, 멘토 등으로 출연해 주로 게스트의 고민을 대변하고 ‘공감’하는 역할로서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 그 중에서도 ‘달리는 사이’는 20대 여성, ‘현직 아이돌’이 모였다는 점에서 인상깊다. ‘달리는 사이’는 K팝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여성 아이돌 선미, 하니, 청하, 오마이걸 유아, 이달의소녀 츄가 국내의 러닝 코스를 함께 달리는 4부작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Mnet 채널에서 방영했으며 지난해 30일 종영했다. 앞서 말했듯 현재 방송가의 판도를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는 여성 방송인들은 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3~40대 연령층이다. 이들은 동일한 성별과 연령층인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고민, 또는 그보다 낮은 연령대에 대한 조언과 공감을 전하는 역할로 출연해왔다. 맛있는 밥과 차가 곁들여진 아기자기한 장소에서 말이다. 하지만 20대 여성, 특히 여자 아이돌이 설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었다. 가요계에서 활동하는 아이돌이 방송가로 진출함에 있어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은 ‘아는 형님’, ‘신서유기’(tvN), ‘집사부일체’(SBS) 등 상대적으로 남성 아이돌이 진출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비해 공급도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전히 잔존하는 망가짐에 대한 두려움, 외모와 이미지의 훼손에 대한 제동이 이들의 입을 막았다. 결국 이들이 가장 간단히 자리할 수 있는 포지션은 ‘게스트’였다. 이들은 이미 모든 게 갖춰진 곳에 사뿐사뿐 등장해 신곡 홍보를 하거나 ‘의외의’ 예능감을 발휘하거나, 새로운 비주얼로서 시각적 환기를 담당했다. 방송에서 하니는 화장을 하고 나오지 않는다. 이를 본 청하도 화장을 하지 않고 달린다. 막역한 사이는 아니지만 이들은 ‘여성 아이돌’로서 살아가는 삶 그 자체로 연대한다. “너 예뻐 죽겠어!”라는 장난스러운 타박부터 “어떻게든 살아남자”라는 비장한 각오까지. 이들은 방송을 위해 처음 만난 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서로를 받아들인다. “경기에서 멈추면 그냥 퇴장해야 할 것 같았다”(츄) “내가 남 앞에서 뭔가를 하는 게 다 잘못된 것 같았다”(유아) 가만 들어보면 이들 제각각 고민은 결이 다르지 않았다. 20대 여성으로서, 같은 직군으로서, 청춘으로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생각부터 깊숙한 우울까지 털어낸다. 다른 점은 이들의 고민이나 우울이 극적이거나, 기사화가 되어 주목을 끌어서 같은 게 아니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 끄집어냈다는 점이다. 방송 2회차에선 선미가 자신의 ‘경계성 인격장애’를 고백했다. 선미가 제작진을 비롯해 그 공간에 있던 모두를 신뢰했기에 나온 이야기였다. 제작진은 많은 이야기를 삼켜내며 살아갈 이들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으로 친밀감을 쌓아가며 촬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게스트였을 땐 말하지 못했던 것들, 말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느끼고 존재하는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이런 내밀한 이야기가 그들 밖으로 해소된 것이 막연히 제작진의 배려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었다. 그들 네 명은 굳게 믿은 것이다. 네가 내가 될 확률에 대하여. 가장 외로울 때, 타인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만큼 완벽한 위로는 없다. 그들은 경기에서 멈추지 말 것, 타인 앞에서 기죽지 말 것을 주문하던 강한 눈빛으로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한 곳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예쁜 파자마를 입고 누울 수도 있었지만 방송은 ‘달리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치유와 연대를 따라가달라 요청한다. 생각해보면 20대 여성 아이돌은 계속해서 그리고 늘 달리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함께 모아 카메라에 담으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좀 더 많은 연대의 기회가 필요하다. 타인에서 나를 찾고, 기꺼이 타인에게 나를 비춰내는 위로의 기회가 간절하다. 가사나 인터뷰같은 굴절된 언어가 아닌, 가슴이 터질 것 처럼 뛰는 그 순간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건네는 꽉 찬 한 마디 말이다. “너도 너무 친절해서, 나중에는 네가 아플 수 있어.” 그런 한 마디에 누군가는 위로받고 누군가는 성장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상처 받거나 불편하거나, 외롭거나 지루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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