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와 빅스비는 불러도 예수 이름은 안 부르는 "역대하 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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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꼭두새벽묵상 임기교회 노태… Date22-11-02 00:00 Hit15 Comment0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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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K-_zGGMTvI
꼭두새벽묵상 No. 735
[역대하 1:1]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하게 하시니라
일주일간 인터넷이 안되는 가운데
지내보니 정말 답답했다.
부족하기 그지없는 글과 영상을 올리려고
해도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단계의 과정을 거치고 나야 겨우
뭐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상황...
예전에야 인터넷이 없어도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전부다가
인터넷 망이 제대로 안되면 할 수 있는
일들이 제한되고 이러한 현상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많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몇 주전 카카오톡 데이터실에 불이 났을
때를 생각해보면 당장 전국의 수많은 택시
기사님들이 손님을 태울수도 받을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 되고 만 것...
얼마나 답답했을 까?
나 역시 낯선 곳에서 카카오 맵이라고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네비게이션을
의존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안되는 네비게이션에 한참
당황스러웠다.
사람이 만든 이 보이지 않는 데이터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대는 정말 필수적인
그런 시대가 되어 버렸다.
기도는 안 해도 답답하지 않고
인터넷이 안되니 이렇게 답답한 시대가
되어 버린...
정말 주님 앞에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
차를 운전해서 목적지로 가는 길이
밀릴 때 어디로 가는 것이 빠른지 검색하는
데는 1등인데....
주님께 나아가는 길은 어떻게 가야 할지
어디로 가는 게 잘 가는 것인지..
바르게 가고 있는 것인지...
이것은 아직도 잘 안된다.
영적으로 철이 들려면 아직도 한참 멀은 것
같다.
내 계산은 지극히 빠른데....
땅에 계산은 정말 빠른데
하늘에 계산은 왜 이렇게 늦은지...
육적인 계산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정말 죄송하지만 귀신같이 다 아는데...
영적인 계산, 영적인 셈법에는 아직도
마냥 어린아이 수준... 마치 아직도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는 그런 느낌이다.
다른 것 잘 못해도... 땅에 것 잘 못해도....
하늘에 것 잘하면 되는데...
위엣 것 잘하면 되는데...
현대인들은 다른 것은다 잘해도 위엣 것,
하늘에 것, 신령한 것, 영적인 것에는 아직도
제자리 걷기 수준으로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글을 적고 설교를 할 때...
강단에 설 때 만큼만 살면
벌써 뭐가 되도 되었을 것 같은데.....
말은 되는 것 같은데
삶은 아직도 안 되는 것.....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예와 아니오
속에 있다는 것...
어제 아침에 마지막에
144편 12절에서 15절까지
읽어보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읽어보셨는지?
듣는 것에 믿음이 난다고 했지만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순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목회를 하는 나도 역시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
되는 것 보다 안 되는 것의 연속
가운데 살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
바로 주님이 내 안에 있는
이 안됨, 이 못됨, 이 게으름, 이 안일함,
이 어리석음, 이 욕심,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게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셧느니라”
주 앙모하는자 주 앙모 하는자......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바울이 수도 없이 말하고 증거
한 것이 오직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만을
생각하는 삶, 그 위엣것의 대상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왜 그런가?
주님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이시 때문이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은 믿음의 주인이시라 말이다.
다른 말로 우리의 모든 믿음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우리 기독교는
무엇을 누구를 믿을 것인가?
기독교의 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기독교는 사람을 믿는 종교가 아니다.
교회 건물을 신봉하거나
어떤 성상을 만들어 경배하거나,
어떤 권력에 엎드리는 종교도 아니다
믿다가 사람이 시험에 들고 시험에 들어
교회 안 나오고 이 교회 저 교회 철새
교인이 되어 방황하는 것이 왜 그런가?
다른 것 없다 그 중심에 사람을 바라 보기
때문에 시험이 들고 넘어지고 하는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고 갈 때는 베드로도
물 위를 분명히 걸었다.
파도를 보니 물을 보니 그만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내가 이 큰 덩어리가 하우스 위를
어찌 걸어 갔단 말인가?
아니 어찌 걸어 갈 용기가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딴 게 아니다.
그 위를 걸어 간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위를 걸어가는 사람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나도 걸어갈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올라가서 보니까 내가 어디를 밟아야
안 넘어지고 잘 갈 수 있을지
보였던 것이다.
하우스 철대 두개가 만나는 그 지점을
밟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다 믿음으로 가는 길은 주님의
발자취만 밟고 가는 것이다.
왜 불평이 나오고
왜 원망이 나오고
왜 감사가 없고
왜 인내가 없고
왜 은혜가 없고
왜 분별을 못하고
왜 심령이 가난하지 못하고
왜 애통하지 못하고
왜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못하고
왜 긍휼히 여기지 못하고
왜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고
왜 화평하지 못하고.....
이거 전부 왜 안되는 것 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주님처럼 안 살기
때문이다. 주님가신 발자취를
안 밟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찬송은 잘 부른다.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정말 주예수와 함께 인가?
정확히는 ‘내 고집과 함께’, ‘내 욕심과 함께’
가 아닌가?
지혜를 구하던 솔로몬 왕..
그렇게 지혜를 구했던 그 마음으로
평생 쭉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잠언을 쓰고 전도서를 쓰고 아가서를
쓰고 했던 그 마음으로 그냥 쭉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 까?
왜? 왜? 아버지의 넘어짐이 아들의
삶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가?
화요일 새벽에 적은 글의 제목이
“아비된 다윗의 심정으로” 이다.
그날 성경본문이 역대상 28장
9절 10절 말씀이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가 계명과
법도를 힘써 준행하기를 오늘과 같이 하면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은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에게 아름다운 땅에서 축복을 누리고
후손들에게도 번영을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아비된 다윗의 심정은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라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안타갑게도 아비된 다윗의
심정이 역대상 28장 9절이어도
자식된 솔로몬이는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의 길을 걸어가고
만 것이다.
그저께 양원역으로 가는 트레킹 구간에서
전화기를 한번 살짝 떨어 뜨린 적이
있었다.
안 그래도 지난주에 일하다가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전화기 화면이 깨어졌는데..
그날 살짝 한번 떨어지고 나서는
이제 화면이 터치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조목사님께서 전화를 하셨는데
받을 방법이 없다.
아무리 화면을 밀어도 전화기는
받아 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화 끊어 지기만을 기다리다가
전화를 끊어지고 나서야 삼성전화기
안에 있는 인공지능인 빅스비를 불러서
“애당교회 전화해줘” 해서 겨우 통화가
가능했던 것이었다.
화면이 깨어짐이 심해지니 터치가
안되는 것을 경험하고 또 깨닫는다.
주님과의 관계도 깨어지면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되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하였건 만
사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터치가 안되어 받을 수가 없을 때
유일한 길은 빅스비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인공지능에게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열심히 구조한다고 해도
일이 진척이 별로 없을 때 바로
그때 우리가 불러야 할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가?
깨어진 상태 깨어진 관계로서는
아무것도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주삼성서비스에가서
액정을 257000원을 주고 교환했다.
넘 잘된다 댓가를 지불하고 나니 되는
것이다.
내 영혼의 죄,
내 어리석음의 죄,
내 미련함의 죄 역시 주님이 십자가에서
전부 다 댓가를 지불하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이 연약함을 딛고
이 어리석음을 딛고 예수께서 가신
그 발자취를 함께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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